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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세계, 시험관을 시작하며

난임 일기

by 칼 융단 2021. 9. 12.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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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굳이 이런 걸 기록해야 하나 했지만

시험관 판결(?)을 받은 지난달부터 식단 조절과 약물을 병행하는데도 식도염, 위염이 낫지를 않아 의사 선생님은 스트레스나 신경 쓰는 일이 없냐고 물어보셨다.

"지금 일도 안하고 있어서 스트레스는 없는데.. 시험관이 좀 신경 쓰이는 것 말고는요."

그랬는데 왠걸.. 우연인지 뭔지 어제부터 시험관 장기요법의 자가주사를 시작했는데, 

오늘 아침 일어나니 속이 이렇게 편할수가..? 

한 달 동안 시험관의 두려움 때문에 생각보다 신경이 많이 쓰였나 싶었다.  

이것을 담아만 두다간 정말 병이 나겠구나 싶어서 끄적여본다. 


결혼한 지 4년 차가 되었고, 2년 동안 병원을 다니며 임신을 시도했다.

난임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직장을 그만두었는데도 아기가 안 생겼다.  

사실 6개월 전만 해도, 병원을 가다말다 했고 성실히 안 한 건 맞지만, 그래도 시도했는데 되지 않았다. 

어느새 동갑인 우리부부의 만 나이는 서른셋이 되었고, 그동안 다닌 병원들에서 아직 어리고 검사 결과도 

이상 없다는 선생님들의 여유?에 심각성을 잘 몰랐던 나는 다음 달엔 되겠지. 하며 2년이 지나버렸다..

점점 난임에 대해 공부를 하게 되니, 내가 이렇게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 난임병원의 원장선생님으로 담당의사를 바꿨다. 원장선생님은 노련하지만, 시크했고 친절한 설명이 없는 스타일이라 내가 원하는 진료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임신만 되면 돼!!' 라는 생각으로 '원장'의 위엄을 믿어보기로 했다.. 궁금한 부분은 간호사님에게 묻거나 따로 공부를 통해 보충했다. 

첫 진료때 원장님은 그간의 진료기록을 보시고 "이번 달 임신 안되면, 다음 달부터 바로 인공수정 시작하죠" 라며 적극적인 시술을 잡아주었다. 나도 더 이상 지체할 이유가 없었기에 동의했고 (사실 나의 동의 따윈 구하지도 않으셨다ㅋㅋ)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시험관 1차의 시작을 알리는 조기배란억제 주사를 배에 놓고 있었던 것이었다.. 


 

'설마' 시리즈 도장깨기, 지금까지의 심경변화

 

결혼 1년차때는 피임을 했었고, 내가 난임이라는 걸 생각조차 안 했기에 그냥 '무지無知'의 상태였다.

"피임만 안하면 우리 바로 되겠지!!" 

2년 차 때부터 자연임신을 시도했는데 좀 잘 안되네? 하고 넘겼다.

"서로 일이 힘들어서 그럴 거야."

3년 차 때에는 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배란초음파를 보면서 숙제를 받아서 했는데 도 안되네?

"좀 쉽지 않네?^^" 

이때부터 병원에서 자궁 내 폴립이 많아서 '자궁경'을 시술해보기를 권유했는데, 그것도 무서워서 1년 넘게 뻐팅겼다. 

4년 차 때부터 심각성을 인지하고, 유명 난임병원으로 전원하여 자궁경 한차례, 나팔관 조영술까지 마쳤다. 

인공수정을 두 번 시도했으나 착상되지 않았고, 지금 시험관 1차로 들어간다. 

 

하나둘씩 시술을 시작하기까지, 나는 '설마' 시리즈로 내 안의 나를 옥죄이기 시작하는데..

"에이 설마.. 자궁경 하겠어?"

"설마.. 나팔관이 막혀있겠어?"

"에이 난포 터지는 주사를 맞아야 되나?"

"설마 인공수정까지 할까?"

"우리는 아직 어리고, 별 이상 없으니까 인공수정 1차 로또 될 수 있지 않을까?"

"하 2차 가는 건가..?"

"에이 설마 진짜 시험관까지 가겠어..?"

" ....... 와버렸넹?" 

"설마" 시리즈는 이렇게 끝날 것 같지만, 다음이 또 있다. 

"설마 내가 시험관 고차수까지 가겠어?"

 

후.. 2년간 이 근거 없고 막연한 희망고문과 좌절을 겪으며 오다 보니 마음이 괜히 힘들었다. 

난임병원에 빨리 왔으면 좀 나았을까? 그렇지만 내 성격상 이 모든 걸 겪지 않고서는 바로 시험관을 가지 못했을 것이다. 

자궁경이나 나팔관이 아프다는 후기가 많아서, 이 간단한 시술들도 못하는 나를 보며 자괴감도 들었다. 

원래 이런 거에 별 겁도 없던 사람이었는데, 왜 이렇게 납득이 안되고 무섭지?  

'난 아직 엄마가 될 준비가 안된 걸까?' '그냥 애기 갖지 말까..?'

시험관을 하기 싫었던 이유도 배에 놓는 자가주사에 대한 공포와, 

인공수정 진행할 때 과배란을 유도하면서 겪었던 호르몬으로 인한 부작용들이 많았기 때문에 더 두려웠다.  

차라리 모르고 그냥 임신했더라면 괜찮았을 텐데, 이렇게 하나하나에 무서워하는 내 자신이 7살 어린아이가 된 듯해서 당황스러웠다.  


덩달아 시달리는 남편, 남편의 역할

 

난임시술은(임신,출산까지도) 어쩔 수 없이 여자가 감내해야 할 아픔과 고생이 90%라고 생각한다. (아, 95%라고 할까?)

남편은 하루만 같이 와서 정액 채취하고 가면 된다. 물론 그 과정에서의 수치심은 간과할 수 없지만, 나에 비할까? 

그래서 임신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남편의 무관심이 느껴질 때, 한 번씩 아주 생난리를 쳤다. 

 

남편은 '본인 힘든 일이나 직장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는 각자 알아서 해결하는 게 좋다'라는 다소 독립적인 성향이다. 

나도 내 일은 알아서 하지만, 관계에서는 꽤나 공감주의적인 성향이다. 

바쁜 남편을 이해하기에 병원도 항상 혼자 다니고 그거에 대해서는 전혀 서운하지 않지만, 가끔 병원에 다녀왔다는데도 과정에 대해 묻거나 공감이 없을 때 이해가 안 가고 화가 났다. 

남편은 오히려 나를 배려해서, 너무 물어보면 내가 힘들까 봐 묻지 않았다고 했지만 그전부터 내가 계속 같이 신경 써달라고 말했는데???

내 입장에서는 남편의 성격이 반영되어, '임신은 너의 일'이니 각자 힘든 감정은 알아서 헤쳐나가자 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차마 이런 과정을 부모님한테도, 친한 친구들한테도 자주 말하기 쉽지 않은데 남편까지 모르면 어떡해?ㅋㅋㅋㅋㅋ

이런 상태에서 우리의 아기를 갖는 게 맞나?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서로 오해가 있었고 항상 잘 풀었지만, 공감해주고 시술 과정에 대해 아는 노력 및 협조를 잘해줄 것을 계속 상기시켜야 한다는 게 씁쓸하다. 

우리는 아기를 기다리는 기간이 너무 길었기 때문에, 남편도 내 히스테리를 받고 눈치를 보는 게 힘들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심지어 아직 임신한 것도 아닌데 나타나는 증상놀이, 호르몬 변화로 일어나는 처음 겪어보는 증상들이 너무 힘들어서 '막상 임신하면 남편이 아주 질려버리는 거 아니야?' 라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ㅋㅋ;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께! 분명한 건 내가 일부러 남편을 괴롭히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앞에서 임신과 출산의 과정에서 여자가 해야 할 일이 90%라고 하긴 했지만, 정자만 띡 주는 것 말고도 남편이 할 수 있는 일은 너무나 많다. 가장 큰 역할은 '공감'과 '격려의 표현', '시술 과정에 대한 공부'인 것 같다. 이것만이라도 잘해주면 시험관 시술 진행 시 일단 가정의 평화는 지켜진다고 본다.. 


시험관을 대하는 자세

 

이 시술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시작했으니 

긍정필터를 쓰고 해보려 한다. 의식적으로 긍정필터라도 안 쓰면 너무 힘들게 다가올 것 같아ㅠ

그리고 고차수까지 가는 것을 받아들이고 두려워하지 말자. 

가장 힘든 과정이라고 하는 난자 채취까지의 과정을 생각보다 매번 겪지 않아도 될 수 있다. 

의술이 발달해서 뭐라도 시도해 볼 수 있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기독교 아님) 

오히려 차수가 많아질수록 성공률도 높아진다는 통계도 있으니께! 

오늘도 되뇐다. 

'모든 일에는 일어나는 이유가 있다' 고.

 

꽃다발 든게 너무 귀여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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