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몇 블록을 사이에 두고 살고 있는 두 남녀가 인터넷 메일을 주고받으며 벌어지는 이야기.
90년대 영화 특유의 필름카메라 느낌 나는 영상 속 활기찬 뉴욕의 아침 거리, 고풍스러운 건물과 현대적 거리를 수놓는 주황색 단풍나무들, 두꺼운 노트북과 pc통신 연결음 그리고 휴대폰이 없는 꽤 아날로그 시대를 마음껏 느낄 수 있다.
두 주인공의 상황과 감정을 복잡하게 따지지 않고 적당히 얼버무리며 감정에 초점을 맞춘 전개와 결말이지만, 요즘처럼 현실 고증이 잘 안되면 받아들이기 힘든 시대에는 가끔 이런 단순하고 밝은 영화가 보고 싶다.
지금은 성형수술 부작용과 근황의 아이콘이 되어버렸지만, 이 시절의 모든 로코물의 여주인공을 찰떡 소화했던 맥라이언은 이 영화에서도 너무나 사랑스럽다. 그리고 성공적인 사업가인 남자 주인공 '조 폭스'. 어찌 보면 거만한 면을 가진 캐릭터인데 톰 행크스가 연기해서 그런지, 뭔가 따숩다..?
지금에야 문자조차 퇴행되고 카톡을 메신저로 사용하지만 이때는 휴대폰은 고사하고, PC로 메일을 주고 받았었지.
내 기억에도 97년도쯤 처음으로 내 이메일 계정을 만들었고, 요란한 연결음으로 인터넷에 접속하면 집 전화는 먹통이 되는 PC통신인가 하여튼 그것을 썼던 기억이 난다.
영화 속 노트북 모델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검색해보니 그때쯤이면 '씽크패드'라는 랩탑이 출시됐던 것 같은데, 무게는 약 2.9kg 정도라고 하니 휴대성이 썩 좋진 않았지만, 내 생각보다 더 이전에 노트북이 출시되었다는 점이 놀라웠다.
98년도면 뒤통수 나온 회색 모니터에 따로 본체 있는 데스크탑만 있는 줄 알았다;
다들 변화는 좋은 거라고들 하죠.
하지만 그건 뜻밖의 일이 생겼다는 것과 같은 뜻이에요.
가끔 내 인생에 대해 회의가 들곤 해요. 내 인생은 소중하지만 소박해요.
가끔 궁금해요. 이게 내가 좋아서 선택한 것인지, 아니면 용기가 없어서 이렇게 사는지 말이에요.
내가 살면서 보는 건 주로 책에서 읽은 걸 연상시키는데, 사실 그 반대라야 하는 것 아닌가요?
대답을 바라고 물은 게 아녜요. 그냥 저 허공에 포괄적인 질문을 하고 싶었어요.
그러니까.. 잘 자요 허공.
(So, good-night dear void)
<더 이상 낭만이 아닌 것들>
영화에서 켈리는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더 샵 어라운 더 코너'라는 작지만 사람들의 소중한 추억이 있는 서점을 운영 중이었다. 그러나 조 폭스가 바로 근처에 복합 문화 대형서점을 오픈하면서 결국 켈리의 서점이 문을 닫게 된다.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이기 때문에 이 부분이 초점은 아니었지만, 분명 그 시대의 트렌드를 볼 수 있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가는 시대. 책만 파는 서점에서 커피와 문화도 함께 파는 복합 문화공간이 생겨나는 시대에서 켈리의 서점은 그 흐름을 읽지 못했다고 봐야겠지. 이런 변화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트렌드의 변화는 더욱더 빨라져 개인이든 사업장이든 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되고, 적응해야만 하는 제한시간은 6개월도 주어지지 않는 것 같아 씁쓸하다.
또 하나는 SNS의 등장과 변화이다. 고작 20년 전이지만, 이 영화의 상황은 요즘 같은 시대에선 절대 위험한 모험이 되어버렸다. 고도로 지능화, 기능화된 SNS 매체들로 편리를 누리는 시대지만 신경 쓸 게 훨씬 많아졌다.
낯선 사람과의 메일링으로 일상을 공유하고, 서로를 전혀 의심하지 않고 실제 만남으로까지 이어지는 게 주제가 된 영화가 다수 있었을 만큼 낭만으로 생각하던 시대였다. 그렇지만 요즘엔 더 이상 이걸 '낭만'이라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피싱과 사기, 개인정보가 관련된 범죄에까지 닿아있어 넷상에서 이뤄지는 모든 것들을 의심하고 조심해야 하는 게 필연적이면서도, 순수했던 그 시대가 그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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